이제 ‘이스라엘(야곱)의 열두 아들 이야기’가 시작됩니다. 주인공은 요셉이고, 그와 대립되는 인물로는 유다가, 주요 조연으로는 르우벤, 시므온, 베냐민이 등장합니다. 이들이 겪는 문제와 해결책은 곧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갖고 있던 문제와 해결책을 반영합니다. 그리고 “하나님 백성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가?”라는 창세기 전체의 주제가 결론으로 제시됩니다. 이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(37~41, 42~47, 48~50장)으로 나뉘는데, 이번 달에는 첫 부분을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. 여기에 상징으로 사용된 ‘옷’과 숫자 ‘2’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그 의미가 더욱 풍성하게 다가올 것입니다.
채색옷을 벗긴 두 개의 꿈(37~38장)
야곱은 열두 아들 중 요셉을 편애했습니다. 야곱이 사랑했던 아내는 라헬이었고, 그녀 가 낳은 첫아들 요셉은 야곱에게 마치 ‘아브라함에게 이삭’과 같은 존재였습니다.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힌 것은 그를 장자로 인 정한다는 뜻입니다(37:3).
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요구하셨던 것처럼, 야곱이 요셉을 빼앗기도록 섭리하십니다. 이를 위해 요셉에게 두 개의 꿈을 주셨고(37:6~10), 요셉의 형들은 그 꿈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(37:20). 형들에 의해 요셉의 채색옷 은 벗겨지고, 아버지를 속이는 도구로 사용됩니다(37:23, 31~32). 형의 옷으로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은, 결국 동생의 옷으로 아버지를 속이는 아들들에 의해 기만당합니다(참조 27:15, 27).
이 가운데 유다가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. 첫째인 르우벤은 요셉을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 했지만, 그의 리더십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(37:22, 29~30). 오히려 넷째인 유다가 리더십을 갖는데, 그는 요셉을 동생이요 혈육이라고 하면서도 노예로 팔자는 모순된 결정을 이 끌어 냅니다(37:27). 이는 살인에 버금가며, 무엇보다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는 죄악입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, 르우벤을 제외한 형 들은 유다의 주도 아래, 요셉을 노예로 팔고 아버지를 속여 ‘뱀의 후손’의 자리에 서고 말았습니다.
한편 유다가 며느리를 통해 아들을 낳는 이야기는 앞으로 진행될 요셉의 삶과 유다의 삶을 대조하기 위한 장치입니다(38장). 가나안 여 인에게서 세 아들을 낳은 유다는, 첫째와 둘째 아들이 모두 악을 행해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자 며느리 다말을 속입니다. 그가 다말에게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고 한 말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(38:11). 결국 유다도 며느리의 옷에 의해 속임을 당합니다(38:14, 19).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얼굴을 너울로 감싸 시아버지 유다가 자신을 창 녀로 여기도록 속였고, 결국 그로 인해 임신합니다. 유다는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에 그녀를 불에 태워 죽이려고 했다가, 오히려 불명 예를 입고 맙니다(38:24~26).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속이는 자가 결국 속게 하시고, 그 죄가 명백히 드러나게 섭리하십니다.
가정 총무의 옷과 두 관원의 꿈(39~40장)
요셉은 창세기의 모든 등장인물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상황을 경험합니다. 그러나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누구보다도 강력 하게 드러난 사람이기도 합니다.
요셉은 보디발의 노예였지만, 그의 모든 소유를 다스리는 실질적인 통치자가 됐습니다(39:4). 보디발의 온 집을 다스리며 오직 아내만 이 금지된 요셉의 상황은, 에덴을 다스리며 오직 선악과만 금지됐던 아담을 연상시킵니다.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(39:8). 그리고 요셉의 벗겨진 옷은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 거짓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(39:12~18).
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가운데에도 그와 함께하셔서, 그곳에서도 모든 것을 관장하는 역할을 하게 하십니다(39:22). 이처럼 요셉은 꿈도 ‘두 번’ 꾸고, 옷이 벗겨지는 억울한 일도 ‘두 번’ 당하며,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통치하는 지 위도 ‘두 번’이나 경험합니다. 그리고 옥에서 ‘두 명’의 관원이 꾼 ‘두 개’의 꿈을 해몽합니다(40:9~19).
이 기간에 요셉이 당한 일은 절망과 좌절 그 자체입니다. 그러나 이 절망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시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습니다.
요셉에게 세마포 옷을 입힌 바로의 꿈(41장)
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고 있었던 기간도 ‘2년’이며,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주신 꿈 역시 ‘두 개’였습니다(41:1~13).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된 요셉은 바로의 두 꿈은 결국 하나이며, 같은 뜻의 꿈을 두 번 꾼 이유는 하나님께서 확정하셨다는 의미라고 말합니다(41:25, 32).
이 일로 인해 요셉은 죄수에서 총리가 되는 놀라운 반전을 이룹니다(41:40). 요셉은 억울하게 두 번이나 옷을 벗었지만, 이는 결국 애굽 총리가 입는 세마포 옷을 입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(41:42). 그의 인생에서 반복된 ‘2’의 의미도 밝혀진 것입니다.
이처럼 보디발의 집에서 자신에게 ‘금지된 하나’를 범하지 않았던 요셉은 ‘땅을 다스리는’ 자가 됩니다(41:45~46). 그는 하나님께서 인 간에게 주셨던 “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”(1:28)는 사명이 어떤 사람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.
요셉이 아내, 즉 돕는 배필을 얻었다는 사실은 이제 그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통치자가 됐음을 보여 줍니다(41:45). 그리고 요셉은 7 년의 풍년 기간에 ‘두 명’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얻었을 뿐 아니라, 두 아들의 이름을 지으며 다음 세대에 분명한 신앙적 정체성 을 전수합니다(41:50~52).
요셉은 애굽만이 아니라, 7년의 풍년 후에 닥친 7년의 흉년을 통해 애굽 주변의 모든 땅을 다스리는 자가 됐습니다.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집을 구원하고, 그 집안의 해묵은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.
문제의 핵심이 드러나다 (42장 )
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끝나고 (37~41 장 ), 이제 창세기의 관심은 가나안에 남아 있던 야곱과 열한 명의 아들에게로 넘어갑니다.
대기근 앞에서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보이는 모습은 결코 화목해 보이지 않습니다(42:1).
요셉을 향했던 야곱의 편애는 막내 베냐민에게로 향했고, 이는 여전한 불화의 근원이었습니다. 열 명의 아들은 애굽으로 보내면서 베 냐민만은 놓지 못하는 야곱의 모습은 이 가정의 해묵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(42:4).
지금까지 속고 당하기만 했던 요셉은 이제 창세기의 마지막 ‘속이는 자’로 등장하는데, 이는 이전의 속임과는 다른, 사람을 구원하고 회 복시키는 속임입니다. 요셉은 애굽에 온 형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, 정탐꾼의 누명을 씌워 형들을 시험합니다(42:9, 12).
이때 형들은 누명을 벗기 위해 자신들이 ‘열두 형제’라고 고백하는데(42:13), 이 말은 이후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됩니다. 비록 이들이 요셉을 노예로 파는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, 요셉을 형제 중 한 명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. 이는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지파별로 분리되지 않고, 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.
요셉은 형들에게 복수할 의도가 없었습니다. 요셉은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의 근본 원인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에 있었음을 알고 있었 기 때문입니다. 그래서 형들에게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요구하는데(42:16), 이는 사실 아버지 야곱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.
이 일이 하나님의 징벌이라 생각하며 후회하는 형들의 모습은 그들이 지난 세월 동안 동생에게 행한 일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음을 보여 줍니다(42:21~22). 그리고 그 대화를 듣고 눈물 흘리는 요셉의 모습은 이미 형들을 용서했음을 알게 합니다(42:24).
그러나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. 이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아버지 야곱이 변화돼야만 했습니다. 그래서 요셉은 열두 아 들 중에서 야곱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 아들 시므온을 인질로 잡습니다(42:24). 이는 아버지 야곱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. “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 시므온을 구원하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내놓으실 수 있겠습니까?”
요셉은 형들의 짐에 그들이 가져왔던 돈뭉치를 도로 집어넣어 야곱과 형들로 하여금 큰 두려움에 직면하게 만듭니다. 만약 야곱의 아 들들이 다시 애굽으로 간다면 정탐꾼일 뿐만 아니라, 도둑으로 몰려 결국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.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던 것처럼, 야곱에게 “네가 가장 사랑하는 베냐민을 포기함으로써 네 아들들을 모두 사랑하 라”고 요구하십니다.
각자의 짐에서 도로 나온 돈뭉치 앞에서 나눈 르우벤과 야곱의 대화는 이들 가정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 줍니다. 르우벤은 시므온을 다시 데려오겠다는 맹세를 하며, 자신의 두 아들의 목숨을 겁니다(42:37). 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아들로 자기 아들들을 손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.
실제로 야곱은 마치 요셉과 베냐민만 아들인 것으로 여기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(42:38). 르우벤을 비롯한 열 명의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아들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고, 야곱은 이를 실토한 셈입니다.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요셉을 통해 야곱으로 하 여금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게 하시고, 결국 그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실 발판을 만드십니다.
우리가 어떤 고난과 역경을 당한다 하더라도,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우리가 서 있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. 노예와 죄 수의 신분이었지만 자신이 선 곳을 다스렸던 요셉의 모습을 통해 주님께서 내게 어떤 사명을 주셨는지를 확인해 봅시다. 그리고 야곱 가정의 문제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죄와 허물을 발견하고, 철저히 회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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